와일드씽 리뷰 (극한의 컨셉, 무성의한 서사, 그리고 충돌)
《와일드씽》은 보기 전부터 관객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보다 캐스팅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 신하균. 그리고 이들에게 1990년대 혼성 댄스그룹 콘셉트를 입힌다는 설정까지 더해집니다. 솔직히 말해 이건 예고편만 봐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특히 강동원과 엄태구처럼 지금까지 과묵하고 진지한 역할을 주로 맡아 왔던 배우들이 촌스러운 의상과 과장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강력한 미끼입니다.
극한의 컨셉
《와일드씽》의 가장 큰 무기는 서사가 아닙니다. 캐스팅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동원과 엄태구를 가지고 놉니다. 관객 역시 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로 영화를 따라갑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랩을 하는 엄태구, 한물간 댄스 가수를 연기하는 강동원, 그리고 발라드 왕자로 등장하는 오정세까지. 솔직히 이 조합 자체는 상당히 강력합니다.
영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보다 배우들의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줄거리보다 강동원의 의상이나 엄태구의 랩이 먼저 떠오를 정도입니다. 좋은 컨셉은 이야기를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와일드씽》은 이야기가 컨셉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설정을 구경하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결국 관객은 배우 때문에 들어오고, 끝날 때도 배우만 기억하게 됩니다.
무성의한 서사
1990년대 가요계는 사실 뭘 가져다 놔도 영화 한 편 나올 만한 소재입니다. 기획사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혼성 그룹이 쏟아지고, 표절과 모방이 뒤섞이며, 한순간 스타가 되고 한순간 사라지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와일드씽》은 이런 배경을 진지하게 탐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수박 겉만 살짝 만지고 지나갑니다.
영화는 세 사람이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 구조를 선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즉흥적이고 가볍습니다. 캐릭터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왜 다시 무대에 서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에 대한 설득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심지어 몇몇 설정은 던져 놓고 수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상황극을 하고 싶은 걸까?"
문제는 코미디 영화일수록 오히려 서사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관객을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은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와일드씽》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코미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서사가 약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서사에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충돌
《와일드씽》이 가장 아쉬운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재미는 있습니다.
오정세와 신하균은 꾸준히 웃음을 만들어 내고, 강동원과 엄태구의 낯선 모습 자체도 충분한 구경거리입니다. 관객이 피식거리거나 웃는 순간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생과 기회, 실패와 재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쌓아 온 것이 많지 않은데 감동은 크게 만들려고 하고, 설득은 부족한데 울림은 크게 만들려고 합니다.
감동은 설득의 결과여야 합니다.
그런데 《와일드씽》은 설득보다 감동을 먼저 요구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쌓이기 전에 오버가 먼저 보이고, 관객이 감정을 따라가기 전에 영화가 먼저 감동하라고 손을 내밉니다.
코미디 역시 비슷합니다. 영화는 웃기기 위해 계속 힘을 주고, 웃기기 위해 계속 과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연스럽고 재밌는 순간은 힘을 빼는 장면들에서 나옵니다. 결국 《와일드씽》은 끝없이 웃기고 싶어 하는 컨셉 코미디와 인생의 재도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휴먼 드라마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문제는 두 영화가 끝내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웃음도 감동도 남지만, 어느 쪽도 끝내 완성되지는 못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이유는 이야기보다 강동원과 엄태구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킵니다. 두 배우의 낯선 모습은 분명 구경할 가치가 있고, 몇몇 장면은 생각보다 꽤 웃깁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영화는 끝까지 컨셉에 의존할 뿐, 그 컨셉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만 남습니다. 결국 《와일드씽》은 컨셉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컨셉을 영화로 완성하는 데는 실패한 작품에 가깝습니다.
극한의 컨셉은 남습니다. 서사는 남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