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리뷰 (폭군 바이러스, 박훈정 공식, 마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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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르 영화에서 박훈정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처럼 통합니다. 《신세계》로 한국 누아르의 대표작을 만들었고, 《마녀》 시리즈를 통해 초인과 실험체가 존재하는 독자적인 세계관까지 구축했습니다. 그래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 역시 공개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특히 마녀 세계관과 연결된 작품이라는 점은 팬들의 관심을 더욱 키웠습니다. 그런데 《폭군》을 보고 나면 이상한 감정이 남습니다. 분명 새로운 작품인데 낯설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리즈처럼 보이지만 이미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익숙함이 《폭군》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처럼 보입니다. 폭군 바이러스 《폭군》의 중심에는 폭군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작품 속 모든 사건은 이 위험한 물질을 둘러싸고 움직이며 각 조직과 국가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추격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폭군 바이러스 자체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폭군 바이러스는 이야기의 목적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영화가 진짜 관심을 갖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인간들입니다. 사람들은 더 강한 힘을 원하고 더 뛰어난 무기를 원하며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폭군 바이러스는 그런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실험체들이 괴물처럼 보이지만 정작 가장 위험한 존재는 그들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폭군》은 초인 액션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질문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마녀》 시리즈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고 《폭군》 역시 비슷한 지점에 도착합니다. 결국 바이러스는 바뀌었지만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는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훈정 공식 《폭군》을 보다 보면 익숙함이라는 감정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실험체가 등장하고 압도적인 능력을 각성하며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립니다. 그리고 마지...

프랑켄슈타인 리뷰 (피조물, 괴물, 델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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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야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오래된 고전 소설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SF와 괴물 영화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며, 인간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위험한 상상력을 처음으로 대중문화에 던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오래된 이야기를 가장 자신다운 방식으로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괴물보다 인간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은 공포 영화라기보다 창조와 책임, 그리고 누가 진짜 인간인가를 묻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피조물 지금까지 많은 프랑켄슈타인 영화에서 피조물은 괴물에 가까웠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실패작이었고, 결국 공포와 파괴의 상징으로 소비됐습니다. 하지만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처음부터 다릅니다. 이 영화의 피조물은 단순한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에 가깝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세상에 던져졌고, 끊임없이 거부당하고 상처받지만 끝까지 인간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버린 창조자마저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빅터 프랑켄슈타인보다 피조물에게 더 감정이 이입됩니다. 이야기의 중심 역시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에게 이동합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다운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이야말로 델 토로가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꺼내 든 이유처럼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피조물이 인간성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언어를 배우고, 사람을 관찰하고, 관계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보다 외모를 먼저 보고, 그의 마음보다 존재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밀려나고 거부당합니다...

F1 더 무비 리뷰 (스펙터클, 공식, 추억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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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는 의외의 흥행작입니다. 물론 브래드 피트가 주연이고 F1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를 소재로 했으니 어느 정도 성공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흥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브래드 피트의 국내 최고 흥행작 기록까지 갈아치웠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 영화가 정말 그렇게 뛰어난 영화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수십 번은 봤던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스펙터클 《F1 더 무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F1 머신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속도를 체험하게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시속 300km가 넘는 머신이 코너를 파고들고, 서킷 위를 질주하며, 충돌 직전까지 몰리는 순간들을 거대한 스크린과 사운드로 전달합니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한물간 베테랑 드라이버가 복귀하고, 젊은 드라이버와 충돌하고, 결국 팀을 위해 힘을 합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포츠 영화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가장 익숙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야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체험하러 왔습니다. 《F1 더 무비》는 서사를 설득하기보다 감각을 압도하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캐릭터보다 레이싱 장면이 먼저 떠오르고, 대사보다 엔진 소리가 먼저 기억납니다. 좋은 영화라서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 이유가 분명한 영화인 셈입니다. 공식 《F1 더 무비》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사실상 제리 브룩하이머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흥행 공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두 남자 주인공, 신구 세대의 갈등, 대립과 협력, 그리고 마지막 승리까지. 우리는 이미 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더 록》도 그랬고, 《나쁜 녀석들》도 그랬고, 《탑건: 매버릭》도 그랬습니다. 달라진 것은 배경뿐입니다. ...

와일드씽 리뷰 (극한의 컨셉, 무성의한 서사, 그리고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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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씽》은 보기 전부터 관객을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보다 캐스팅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 신하균. 그리고 이들에게 1990년대 혼성 댄스그룹 콘셉트를 입힌다는 설정까지 더해집니다. 솔직히 말해 이건 예고편만 봐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특히 강동원과 엄태구처럼 지금까지 과묵하고 진지한 역할을 주로 맡아 왔던 배우들이 촌스러운 의상과 과장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강력한 미끼입니다. 극한의 컨셉 《와일드씽》의 가장 큰 무기는 서사가 아닙니다. 캐스팅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동원과 엄태구를 가지고 놉니다. 관객 역시 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로 영화를 따라갑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랩을 하는 엄태구, 한물간 댄스 가수를 연기하는 강동원, 그리고 발라드 왕자로 등장하는 오정세까지. 솔직히 이 조합 자체는 상당히 강력합니다. 영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보다 배우들의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줄거리보다 강동원의 의상이나 엄태구의 랩이 먼저 떠오를 정도입니다. 좋은 컨셉은 이야기를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와일드씽》은 이야기가 컨셉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설정을 구경하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결국 관객은 배우 때문에 들어오고, 끝날 때도 배우만 기억하게 됩니다. 무성의한 서사  1990년대 가요계는 사실 뭘 가져다 놔도 영화 한 편 나올 만한 소재입니다. 기획사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혼성 그룹이 쏟아지고, 표절과 모방이 뒤섞이며, 한순간 스타가 되고 한순간 사라지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와일드씽》은 이런 배경을 진지하게 탐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수박 겉만 살짝 만지고 지나갑니다. 영화는 세 사람이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 구조를 선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 즉흥적이고 가볍습니다. 캐릭터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왜 다시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혁명, 권력, 그리고 다음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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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얼핏 보면 혁명가들과 권력자들의 대결을 다룬 정치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무장 혁명 단체도 등장하고, 정부와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들도 등장하며, 총격전과 추격전 같은 장르적 재미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은 혁명가를 정의롭게 그리거나 반대로 체제를 지키는 쪽을 더 정당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양쪽 모두를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혁명가와 권력자 모두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훨씬 더 중요한 질문 하나를 꺼냅니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혁명은 왜 실패하는가  영화 속 무장 혁명 단체 프렌치 75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민자를 보호하고 차별에 저항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명분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총을 들고 폭탄을 만들며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물론 본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매우 냉정합니다. 혁명가들이 아무리 순수한 명분을 외쳐도 총을 드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하고, 결국 그 피해는 더 강한 공권력과 더 강한 통제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도 비슷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은 중요하지만 그 열망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급한 분노는 자신이 무너뜨리려 했던 시스템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는 혁명을 믿지 않습니다. 문제는 혁명이 실패했다는 점이 아닙니다. 영화가 말하는 진짜 문제는 혁명가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잊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고, 결국 자신들이 비판하던 대상과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

프레데터 죽음의 땅 리뷰 (프랜차이즈 부활, 루저 프레데터, 시리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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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데터: 죽음의 땅》은 의외의 영화입니다. 공개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또 프레데터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프레데터 시리즈는 이미 여러 번 부활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에일리언과 함께 할리우드 SF 영화의 대표적인 괴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졌고, 최근에는 신작이 나온다고 해도 크게 기대하는 관객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땅》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괜찮은 속편이 아니라 사람들이 잊고 있던 프랜차이즈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작품에 가깝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프레데터 시리즈를 어떻게 다시 흥미롭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프랜차이즈 부활의 정석 프레데터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했던 1987년을 떠올려 보면 이 시리즈가 왜 성공했는지 의외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프레데터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보다 강하고, 인간보다 빠르며, 인간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존재였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인간을 사냥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하며, 밀림 한가운데서 특수부대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강한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공포는 원래 미지에서 나옵니다. 문제는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그 미지가 점점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프레데터가 어떤 종족인지, 왜 사냥을 하는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가 하나씩 설명되기 시작했고 결국 관객도 이 캐릭터에 익숙해졌습니다. 한때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만들던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는 "또 나왔네" 정도의 반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실 프레데터 시리즈의 가장 큰 적은 인간도, 에일리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익숙함이었습니다. 공포 영화에서 괴물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듯 프레데터 시리즈 역시 같은 문제를 피하지...

굿뉴스 리뷰 (블랙코미디, 역사 재해석, 현재를 향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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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뉴스》가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불한당》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킹메이커》를 통해 묵직한 정치 드라마를 선보였던 변성현 감독은 이번에는 본격적인 블랙코미디로 돌아왔습니다. 소재는 1970년 실제로 발생했던 요도호 납치 사건입니다. 얼핏 보면 오래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1970년대 이야기인데 보고 있는 사람은 자꾸 현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결국 《굿뉴스》의 가장 큰 강점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데 있습니다. 역사극의 탈을 쓴 블랙코미디  《굿뉴스》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입니다. 요도호 납치 사건은 결과만 보면 제목 그대로 '굿뉴스'입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건이 비교적 무사히 마무리됐고, 외교적으로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북한으로 가겠다며 여객기를 납치한 일본 적군파, 국제 정세 속에서 눈치를 봐야 했던 정부,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공을 챙기려는 권력자들까지. 한 발짝만 물러나서 보면 심각한 사건인데 또 한편으로는 웃기고 황당한 상황들의 연속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랙코미디가 힘을 얻습니다. 비극인데 웃기고, 웃기는데 씁쓸합니다. 변성현 감독은 이 사건이 가진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창작 캐릭터를 끼워 넣어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역사극과 블랙코미디의 균형을 상당히 영리하게 잡아냅니다. 특히 설경구가 연기한 암무게라는 인물은 영화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장치입니다. 실제 역사 속 빈 공간을 메우면서도 이야기의 개연성을 만들어 주고, 동시에 블랙코미디의 웃음을 담당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캐릭터인데 영화는 의외로 이 인물을 적절한 선에서 활용합니다. 역사 재해석, 과거가 현재와 겹치는 순간 블랙코미디가 진짜 무서운 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