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 시즌 2가 공개되었습니다. 김주환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지는 이번 작품은 배우들의 헌신적인 맨몸 액션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클리셰 서사와 허술한 설정으로 적잖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김주환 감독의 서사 클리셰 구조 반복
김주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하나의 일관된 패턴이 드러납니다. 《청년 경찰》, 《사자》, 《무도실무관》, 그리고 《사냥개들》 시즌 1과 시즌 2까지, 작품마다 서사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합니다.
먼저 등장하는 주인공은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 청년, 한 명 또는 두 명입니다. 두 명이면 버디 무비, 한 명이면 히어로 무비 형식에 가깝습니다. 이 청년들은 운동이나 게임을 즐기고, 여자를 좋아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없는 '멍청하지만 착한' 유형으로 묘사됩니다. 고기 구워 먹기를 좋아하고 얼빠진 면이 있지만, 심성만큼은 선합니다.
이 청년들 앞에 어느 순간 임무가 떨어집니다. 성범죄자, 장기 밀매 조직, 악마의 하수인처럼 누가 봐도 100퍼센트 나쁜 놈들입니다. 처음에는 대충 상대해 보다가 의외로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강력한 소명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주인공들은 기존의 양아치 기질을 버리고 어른들이 보기에 건실하고 착실한 청년으로 거듭납니다. 《무도실무관》에서 김우빈이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나오며 주무관에게 "머리 검게 했네, 단정하고 좋다"는 말을 듣는 장면이 바로 이 순간을 상징합니다. 정확하게 기득권 꼰대들이 바라는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이 타이밍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강한 악당의 역습으로 주인공이 패배하거나 크게 다치고, 멘토 역할의 어른이 죽거나 크게 당합니다. 《청년 경찰》에서는 주인공들이 패배하고, 《사자》에서는 안성기 배우가 연기하는 박 신부가 크게 당하며, 《사냥개들》에서는 허준호가 악당에게 살해당합니다. 이후 주인공은 상의를 벗고 신체를 단련하는 장면이 길게 펼쳐지다가, 혼자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이 서사 구조는 성룡의 《취권》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낡은 클리셰입니다. 별 생각 없던 젊은이가 계기를 만나 강해지고, 스승이 악당에 의해 쓰러지며, 주인공이 혼자 단련하여 복수하는 이야기는 사실상 서사라기보다 클리셰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배경과 주인공의 이름만 바뀔 뿐, 얼굴조차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청년 경찰》의 박서준이 《사자》에 그대로 등장하고, 《사자》의 악역 우도환이 《사냥개들》에서 그대로 등장합니다. 박서준에서 김우빈으로, 우도환과 이상이로 얼굴만 바뀌는 수준으로 반복됩니다. 서사 구조는 완벽히 동일합니다.
재현의 윤리를 외면한 캐릭터 묘사 문제
김주환 감독 영화에서 두 번째로 지적해야 할 문제는 선과 악의 경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다섯 가지 프로토타입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착한 놈, 착하고 싸움 잘하는 놈, 못된 놈, 싸움 좀 못하는 못된 놈, 그리고 싸움을 매우 잘하는 매우 나쁜 놈. 여기에 번외로 불쌍하게 당하는 여자 캐릭터가 꼭 등장하며, 가장 강한 악당이 이 여자 캐릭터를 괴롭히는 구도가 반복됩니다. 《청년 경찰》에서도, 《무도실무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무도실무관》에서는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캐릭터가 착하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의 성기훈을 예로 들면, 첫 에피소드에서 엄마 돈을 훔쳐 경마장에 가고, 얻어맞고, 뺨을 맞으면서 돌아가는 길에 길고양이에게 고등어를 건네줍니다. 이 단 하나의 장면이 관객으로 하여금 "저 인간, 답은 없는데 최소한 악당은 아니겠구나"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이것이 바로 입체적인 캐릭터 빌드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면 김주환 감독의 캐릭터들은 완벽한 2D입니다. 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도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사냥개들》 시즌 1에서 주인공 두 명이 불법 사채업자 사무실에 출근하는 길에 전동 킥보드를 타면서 FM대로 헬멧을 쓰고 달려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사채업자의 사냥개들로 일하러 가는 길인데도 헬멧을 꼭 쓰고, 도착해서는 얌전히 벗어 킥보드에 거는 모습으로 이 청년들이 건실하고 착한 청년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현의 윤리입니다. 허준호가 연기하는 사채업자 캐릭터는 극 중에서 마음씨 착한 멘토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사채업자의 본업은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뜯어내는 것입니다. 허준호 캐릭터는 그 사채업자들 중에서도 왕 사채업자입니다. 극 중에서는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자를 안 받고 주로 기업 대출로 큰돈을 다룬다"며 쉴드를 치려 합니다만, 그렇다면 기업들에게 무식하게 이자를 뜯어내도 좋은 사람이 되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게다가 칼잡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돈을 안 갚으려는 상대방이 조폭을 고용하면 그 칼잡이들로 그 조폭들을 싹 쓸어버렸다는 설정은, 이 인물이 실질적으로 다수의 사람을 죽인 인물임을 의미합니다. 사냥개들이라는 제목 자체가 돈만 받으면 불법적인 일이든 무엇이든 해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주인공들은 사채업자의 사냥개들이면서도 공공질서를 칼같이 준수하고 돈에 욕심이 없는 착한 청년들로 포장됩니다.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는 인물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1950년대에 이미 깨진 관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재현의 윤리가 존재합니다. 나쁜 놈은 미화해서는 안 되고,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는 인물을 선하고 착한 인물로 세탁해서도 안 됩니다. 이영애 주연의 《색, 계》에 등장하는 양조위의 캐릭터는 전형적인 친일파이며 독립운동가를 잡아 죽이는 인간 말종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인물을 단 한 컷도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탕웨이가 그 남자의 진심 한 조각에 홀려버려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나쁜 놈을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로 삼을 때 지켜야 할 재현의 윤리입니다.
현실성 결여: 재벌 설정과 다크웹·국정원 클리셰 남용
각본의 문제는 악당 설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극 중 재벌 2세로 등장하는 최시원의 캐릭터 설정은 또 다른 현실성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김주환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재벌 2세는 마치 동네 땅을 좀 갖고 있다가 비싸게 판 지역 유지 정도의 수준으로 그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시원이 연기하는 재벌 2세 캐릭터는 허름한 술집에 혼자 방문했다가 약이 탄 술을 마시고 쓰러집니다. 이재용, 최태원, 정몽구 같은 실제 재벌 수준의 인물이라면 그 근처 동네에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벌이 사람 몇 명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택한 장소가 영등포 메리어트 호텔이라는 설정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실제 재벌이라면 전용기를 타고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지로 하루 만에 이동하거나,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경찰에 보호 신청을 하고 경찰청 건물 안으로 대상자를 보내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조폭이 달려들어도 경찰청 건물은 절대 뚫을 수 없습니다.
다크웹(다크넷) 활용이나 국정원 전직 요원의 능력 묘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추적이 안 되는 프로그램을 써서 범죄를 모의하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단체 범죄 모의방, 전직 국정원 요원이 보유한 엄청난 정보망과 능력 같은 요소들이 아무런 디테일 없이 등장합니다.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막연하게 존재하는 추상적인 고정관념, 즉 '다크웹은 뭔가 무섭고 강력한 것', '국정원 전직 요원은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모호한 인상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입니다. 이것은 창작자로서의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게으른 서사 구성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제대로 된 디테일로 채워 설득력 있게 구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청자의 지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이 모든 비현실적 설정들은 한 가지 근본적인 원인에서 비롯됩니다. 전작보다 더 무시무시한 악당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주인공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최후의 맞장 대결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막연한 목표만 있을 뿐, 그것을 현실 기반에서 촘촘하게 구현할 상상력과 디테일로 채울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 열연: 각본의 한계를 몸으로 메운 우도환·이상이·비(정지훈)
이처럼 치명적인 각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냥개들》 시즌 2를 끝까지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헌신적인 열연 덕분입니다.
우도환은 이번 시즌에서도 실제 격투기를 정식으로 수련한 사람의 몸과 기운, 포스, 표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신체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조만간 아마추어 복싱 데뷔 시합을 치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진짜 배우가 열연을 펼쳐주고 있는데, 각본이 그를 맞장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차에서 그저 울고, 사과하고, 감사 인사를 반복하는 역할에만 머물게 한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막으려 했는데도 스스로 발로 걸어가는 가장 멍청한 선택을 반복하는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은, 배우의 역량을 각본이 오히려 발목 잡는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이상이 역시 극 중에서는 싸움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의 몸은 몇 년간 밥 먹고 운동만 한 사람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된 훈련으로 만들어진 그 신체는 화면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됩니다.
비(정지훈)의 경우 1982년생, 만 나이로 43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몸 관리와 격투 장면 소화 능력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시간이 넉넉해도 몸을 만들려는 사람의 노력은 절대 눈속임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연기력 측면에서의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육체적 성실함만큼은 진심이 느껴집니다. 세 배우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맨몸 액션을 실제로 소화해냄으로써 일종의 순고함마저 느껴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반면 이시원의 연기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의 친근한 모습과는 별개로, 이번 드라마에서는 목소리만 있는 듯한 존재감에 그쳤으며 연기력 면에서 호평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배우들의 열연이 각본의 허접함을 어느 정도 메워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 기괴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유발합니다. 이 배우들이 범죄도시 수준의 각본만 만났더라도 훨씬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한 원망으로 바뀌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사냥개들》 시즌 2는 배우들의 육체적 헌신과 맨몸 액션의 완성도라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을 대담하게 무시한 각본과 등장인물 전원의 지적 수준을 바닥으로 처박아 놓은 서사 구성으로 인해 명백한 한계를 드러냅니다. 단순 무식한 액션을 원하는 시청자에게는 일정 수준의 만족감을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완성도를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깊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