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 당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정확히 20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 등 오리지널 멤버가 총출동한 이번 작품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개봉했습니다. 과연 20년의 세월은 이 시리즈에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요?
1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서사 구조와 캐릭터의 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편의 성공은 단순한 패션 판타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뿌리는 탄탄한 원작 소설에 있었습니다.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는 보그지의 7대 편집장 애나 윈터의 어시스턴트로 근무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2003년 동명의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애나 윈터는 패션계에서 '교황'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망해가던 보그지를 하드 캐리하여 정상에 올려놓은 전설적인 편집장입니다. 로렌 와이스버거는 이 실존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미란다 프리슬리라는 매력적인 빌런 캐릭터를 탄생시켰습니다.
1편의 서사 구조는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적 공식을 기반으로 하되, 두 가지 핵심적인 변형을 통해 차별화에 성공했습니다. 첫째,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순진무구형 주인공 앤디 삭스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명품 패션 업계에 입문하면서 겪는 정체성 혼란의 이야기를 덮어씌웠습니다. 앤디는 처음에 패션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겉모습 치장에만 골몰하는 세계라며 은근히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미란다에게 통렬하게 논리적으로 박살 난 이후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며 1차 성장을 이루고, 이후 업계 정상에서 벌어지는 협잡과 음흉한 정치질에 신물이 나 업계를 떠나기로 하면서 2차 성장까지 완성합니다. 단 한 편 안에서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이중으로 완결 짓는 구조는 매우 정교한 설계였습니다.
둘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앤디 삭스, 에밀리, 미란다 프리슬리 세 명의 여주인공은 사랑을 쟁취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직업을 지키거나, 자신이 진짜 원하는 가치를 찾기 위해 싸웁니다. 앤디가 날리는 "I'm not your baby"라는 대사는 그 정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에밀리와 스탠리 투치가 연기한 나이젤이라는 감초 캐릭터들도 이 세계관에 설득력과 온기를 더했습니다. 결국 1편은 잘 빠진 원작, 실존 인물에서 영감받은 매력적인 캐릭터,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여성 서사, 그리고 럭셔리 패션 구경이라는 볼거리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속편의 한계: 반복된 구도와 달라진 시대 사이의 모순
속편 제작이 발표되었을 때, 조건 자체는 이상적으로 보였습니다.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각본가 앨런 브로시 메케나, 그리고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1편의 오리지널 출연진이 모두 합류했습니다. 디올을 비롯한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협찬 경쟁을 벌였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1편 개봉 이후 프라다가 얻은 무형의 막대한 홍보 효과를 생각한다면, 이번 편에서 디올의 로고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속편이 근본적으로 풀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패션 잡지는 더 이상 패션계의 권력이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고, 종이 잡지를 사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매체가 힘을 잃으면 광고에 의존하게 되고, 광고주에게 매달리는 매체는 더욱 힘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LVMH와 같은 거대 공룡 패션 기업이 탄생하면서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조차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편입되었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사치의 대중화'라는 현상이 명품 업계의 영업 방식 자체를 뒤바꿨습니다.
이 변화한 시대 속에서 속편의 시나리오는 근본적인 딜레마에 빠집니다. 미란다 프리슬리는 절대 권력을 쥔 강력한 상사여야 매력적인데, 변한 업계 환경에서 그 권력은 이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제작진은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앤디를 정통 저널리즘 최전선에서 해고시킨 뒤 다시 패션 업계로 불러들이고, 런웨이는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 1편의 구도를 고스란히 복사합니다. 시대 변화는 대사로만 언급될 뿐, 실제 서사에는 진지하게 반영되지 않습니다. 화려한 럭셔리 패션 구경의 재미를 빼앗을 수 없다는 상업적 판단이 이야기의 진정성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20년이 지났음에도 40대가 넘은 앤디는 여전히 합발이 초짜처럼 굴어야 하고, 극중 나이로 75세가 된 미란다는 여전히 뾰족하고 까랑해야 합니다. 이 설정의 무리함을 영화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반복은 한 번까지는 먹히지만, 이번 속편은 그 반복이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설득력이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명품 브랜드 협찬과 서사의 충돌,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아쉬움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날카로운 비판 중 하나는 명품 브랜드 협찬이 서사를 잠식했다는 점입니다. 앤디와 미란다가 예산 삭감으로 이코노미석을 타고 유럽으로 향한다는 설정을 도입해 놓고, 막상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최고급 호텔에 머물며 럭셔리 카를 타고 돌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코노미석 장면은 왜 넣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패션쇼 장면은 마치 광화문 BTS 콘서트 규모처럼 압도적으로 펼쳐지고, 레이디 가가까지 등장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대사로 밀어두고, 협찬받은 명품 브랜드들의 화려한 장면은 어떻게든 소화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영화의 숙명이 패션 잡지의 숙명과 닮아버린 아이러니입니다.
앤디가 3년간 인터뷰를 거부했던 여성 재벌 샤샤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방식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해결책은 전화를 몇 통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전화번호를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이 장면은 1편에서 해리 포터 원고를 구해오는 장면보다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앤디의 능력이 아니라 운에 기댄 전개입니다.
에밀리의 변신 과정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미란다에게 쫓겨난 이후 부득부득 애를 써서 디올이라는 전지구급 럭셔리 브랜드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에밀리가, 돈이 썩어나는 부자 남자친구들을 활용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결국 미란다에 대한 복수라는 설정은 캐릭터의 깊이를 살리지 못합니다. 스탠리 투치가 연기하는 나이젤의 감동적인 장면 역시, 나이젤이 미란다에게 뒤통수를 맞고도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것이 순수한 희생이 아니라 등가 교환에 가까웠다는 극 중 대사와 충돌합니다. 장면이 살아났다면, 그것은 오롯이 스탠리 투치의 명연기 덕분입니다.
그리고 결말의 해결 방식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나이브한 지점입니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패션 업계를 인정하지 않는 천박한 재벌의 음모에 대항하는 방법이 결국 다른 돈 많은 재벌을 설득해 인수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미란다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앤디에게 했던 대사, 즉 자본과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 개척한 위대한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이 결말은 그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패션을 이해하고 예술을 이해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려는 욕심을 조금이라도 부렸다면 훨씬 울림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이바흐 안에서 미란다가 씁쓸하게 "결국 이 사람도 달라질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덧붙인다고 해서 이 나이브함이 상쇄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한마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라는 명배우들의 앙상블 덕분에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을 외면한 채 1편의 구도를 그대로 반복하고, 명품 브랜드 협찬에 서사가 끌려다니며, 자본의 논리를 자본으로 해결하는 결말은 영화가 스스로 표방한 메시지를 스스로 허무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1편을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반갑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