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는 변화무쌍한 정체성을 지닌 여성 범죄자 사라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배우 신혜선의 열연과 이준혁의 외모로 화제를 모았지만, 장르적 완성도와 서사 논리에 대한 날카로운 물음을 함께 남긴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에로틱 스릴러 장르의 계보와 《레이디 두아》의 위치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 파치노와 엘렌 바킨이 등장한 《사랑의 파도》, 그리고 윌리엄 허트와 캐슬린 터너가 출연한 1981년작 《보디 히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매력적인 여성 범죄자와 그녀를 추격하는 남자 형사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구도는 장르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가 "보디히 뭐 액션이야"라고 말하는 명장면도 바로 이 1981년 영화 《보디 히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장르의 정점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샤론 스톤과 마이클 더글라스, 그리고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든 《원초적 본능》입니다. 1992년 전 세계를 강타한 이 영화는 여성 피의자와 남자 형사 사이의 위험하고 관능적인 심리전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수작입니다. 특히 심문실에서 샤론 스톤이 다리를 꼬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아이코닉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이 장면은 샤론 스톤이 감독으로부터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촬영하도록 압박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지금 와서는 상당히 문제적인 시선으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만, 당시 90년대의 쾌락과 관능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임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원초적 본능》 이후로 이 장르는 사실상 변화가 없었습니다. 매력적인 여성 범죄자는 솔직한 욕망의 화신이며,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을 홀리듯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고, 자기 패를 끝까지 드러내지 않으며 밀당을 기가 막히게 구사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매력의 끝에서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 장르적 문법입니다. 《레이디 두아》 역시 이 틀을 충실히 따릅니다. 다만, 《원초적 본능》이 자극과 완성도를 동시에 잡은 작품이었다면, 《레이디 두아》는 자극의 절반은 걷어낸 채 장르의 외형만을 빌려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혜선의 사라킴, 그리고 서사의 구조적 허점
《레이디 두아》의 핵심은 신혜선이 연기하는 사라킴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이 인물은 목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죽은 척한 뒤 김은제로 신분을 세탁하고, 다시 사라킴이 되어 부두아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대규모 사기를 치는 인물입니다. 각 에피소드 제목은 사라킴의 과거 이름들로 구성되며, 비선형적 구조 안에서 그녀의 행적이 하나씩 공개됩니다. 그러나 비선형적 스토리텔링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설명하기 편한 부분만 골라 이야기하는, 지극히 작가 편의적인 방식이라는 평이 더 정확합니다.
가령 목가이가 저수지에서 뛰어내린 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름 하나 없이 어떻게 몇 년을 생존했는지, 어떻게 김은제라는 신분을 완벽히 획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드라마에서 일절 등장하지 않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CCTV 밀집 국가이며, 서울은 인구가 극도로 집중된 메트로시티입니다. 홍대에서 목동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수십 대의 CCTV에 포착될 수 있는 환경에서, 핸드폰·은행 계좌·신용카드·전세 계약 등 디지털로 기록된 모든 흔적을 지우고 타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드라마는 이러한 서사적 공백을 설명하는 대신, 그냥 건너뛰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준혁이 연기하는 형사 박무경 캐릭터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사실상 이야기의 참여자가 아니라 관객의 역할을 합니다. 마치 《타이타닉》에서 보물 사냥꾼 브룩 로벳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액자 밖의 존재인 것처럼, 박무경은 사라킴의 과거 이야기를 관객에게 설명해 주기 위한 장치로만 기능합니다. 이준혁이라는 배우가 가진 외모와 스타일을 구경하는 재미 외에, 이 캐릭터가 서사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거의 없습니다. 장르적 형식에 따라 사라킴과 위험한 섬을 타거나 감정적 긴장감을 형성했더라면 훨씬 입체적인 작품이 되었을 텐데, 감독은 그 방향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라킴의 정체성과 빈센트 앤코 사건이 던지는 질문
《레이디 두아》가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실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빈센트 앤코 사건입니다. 100년 역사의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를 자처하며 청담동에 매장을 열고, 유명 연예인들의 방문으로 화제를 모은 이 브랜드의 실체는 경기도 시흥시 한 공장에서 원가 10만 원에 만들어진 시계를 500만 원에 판매한 사기였습니다. 한국에서 거의 완성된 제품을 스위스로 보내 최종 공정과 포장을 마치면 수입품이 되는 구조를 활용한 이 사건으로 유통업자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진짜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짝퉁이었던 것입니다.
《레이디 두아》는 이 '원본 없는 짝퉁'이라는 주제를 사라킴이라는 인물에 투영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작품이 스스로 제기하는 주제보다 훨씬 흥미로운 물음이 하나 파생됩니다. 사라킴은 평생을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쌓으며 스스로를 숨겨 온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가 드라마 안에서 가장 격렬하고 진심 어린 분노를 드러내며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유일한 계기는, 다름 아닌 김미정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흉내를 낸 일이었습니다. 김미정은 "사장님이 진짜가 아니니까 내가 가짜를 행세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사라킴은 사업상 중요한 자리에 직접 등장해 왔기 때문에 김미정을 굳이 죽일 실질적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심리적 아이러니입니다. 평생 가짜로 살아온 사람도, 누군가 자신의 정체성을 모방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짝퉁일지언정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인데, 그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 누구보다 깊이 긁힌 것은 바로 본인이었습니다. 이 역설은 작품이 의도한 주제와는 별개로, 관객이 스스로 발견해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드라마는 이 물음을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습니다.
마지막 한마디
《레이디 두아》는 신혜선이라는 배우 한 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기 위해 설계된 드라마입니다. 신혜선은 오버액팅 없이 눈꼬리와 입꼬리만으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며, 여성 범죄자 역할을 이미 여러 작품에서 훌륭히 소화해 온 배우답게 이번 작품도 잘 해냈습니다. 다만 사용자 비평이 정확히 지적하듯, 21세기 대한민국의 디지털 행정 시스템과 사법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서사 논리와 설명되지 않는 공백들은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끌어내리는 요인입니다. 장르의 쾌감을 원한다면 《원초적 본능》을, 신혜선의 연기를 원한다면 《레이디 두아》를 선택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