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기리고(If Wishes Could Kill)》가 대한민국, 인도, 멕시코, 프랑스, 브라질 등 전 세계 5위권 안에 진입하며 조용하지만 강력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인 배우들로만 구성된 학원 호러 오컬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는 이유는 무엇인지, 작품의 연출·서사·배우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K호러오컬트 장르의 현재와 기리고의 글로벌 흥행
《기리고》의 흥행은 단순한 넷플릭스 알고리즘의 수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은 유명 배우 없이 신인 배우들로만 채워진 학원 호러 오컬트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한국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한 시청자 유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는 K콘텐츠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선순환 구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가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꾸준히 유지해 왔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지 않고, 그 투자가 다시 좋은 작품을 낳는 선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호러 오컬트 장르는 이 선순환 구조에서 가장 효율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기리고》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무빙》과 비교해 보면 제작비 규모 차이는 압도적입니다. 무빙 쪽이 100배 이상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흥행 스코어는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호러 오컬트 장르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전 세계 시청자에게 통할 수 있는 아이디어 집약적 장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여기서 한국 오컬트 호러가 가진 고유한 강점이 드러납니다. 한국은 토속 신앙, 무속 문화, 점집 문화 등이 여전히 일상 가까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문화적 토양은 오컬트 소재를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할리우드나 유럽과 달리 이 오컬트가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지 않고, 반면 일본과 비교해서는 콘텐츠 제작 능력과 제작 속도 면에서 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 지금, K호러 오컬트는 K콘텐츠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충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리고》는 그 가능성을 실제 흥행 수치로 입증한 첫 번째 사례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속편 제작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마지막에 떡밥을 남겨 놓은 구성이나 호러 오컬트 시리즈 특성상 제작비 효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넷플릭스와 제작사 양측 모두 속편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름 시즌이라는 시의성과 맞물려 장기 흥행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기리고》는 단순한 시즌 1 히트작이 아니라 프랜차이즈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작품입니다.
박윤서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앙상블
《기리고》를 연출한 박윤서 감독은 2009년 공포 영화 《불신지옥》에서 연출부로 시작해 《명량》, 《특별시민》, 킹덤 시즌 2 등의 조감독을 거쳐 《무빙》에서 공동 감독으로 데뷔한 인물입니다. 최소 17년 이상 현장에서 직접 구른 경험이 쌓인 감독입니다. 이 경험치는 《기리고》 전반에 걸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연출의 핵심 키워드는 '무난함'입니다. 이것이 부정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호러 오컬트 장르에서 무난함은 곧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컬트 호러에서 분위기는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요소이고, 이를 지켜냈다는 것은 기본 점수 70점 이상을 확보했다는 뜻입니다. 감독은 기분 나쁜 어둠, 즉 아무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이 아니라 오컬트적으로 불쾌한 어둠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를 연출의 핵심으로 두었고, 이를 무난하게 해냈습니다.
시리즈 연출 경험도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영화 감독이 드라마 시리즈를 연출할 때 흔히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클리프행어, 즉 매 회차 마지막에 다음 화를 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박윤서 감독은 《킹덤》과 《무빙》을 통해 시리즈 문법에 익숙한 덕분에 이 부분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일상의 공간과 공포의 공간으로 유연하게 전환하는 연출 역시 《무빙》에서의 학교 배경 촬영 경험이 빛을 발한 부분입니다.
배우들의 공 역시 지대합니다. 주인공 전소용은 처음 접하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담기 좋은 얼굴로 악령 빙의 장면에서 섬찟한 분위기를 살려 냈습니다. 임나리 역의 강민화 배우는 프로듀스 101 출신, I.O.I 활동 이력이 있음에도 그것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만큼 호러 장르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고, 어느 장르에 배치해도 자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배우입니다. 백선호, 강아진 등 남자 배우들도 표정 연기와 독특한 마스크로 호러 장르에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노재원 배우는 낙천적이고 가벼운 역할을 통해 어두운 시리즈에 유쾌함을 더하며 다재다능함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클리셰 활용의 미학, 링 아류를 넘어서는 방식
《기리고》의 서사는 솔직히 말해 완전히 새롭지 않습니다. 1998년 영화 《링》에서 재정립된 '저주가 담긴 매개체를 잘못 접촉한 이들이 사생결단에 처하게 되는' 공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링》에서 저주의 매개체가 VHS 테이프였다면, 《기리고》에서는 핸드폰에 설치되는 앱으로 업데이트되었을 뿐입니다. 저주에 걸린 주인공이 원인을 추적하고, 저주를 건 존재의 원한을 파악하고, 저주의 매개체를 제거하려 시도하지만 허사가 되는 구조도 동일합니다. 《이블 데드》부터 내려온 '귀신 씐 물건 잘못 건드렸다가 작살나는' 호러의 오래된 공식 위에 놓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기리고》의 결함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장르물의 미덕은 장르의 법칙을 완전히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장르의 법칙을 지키면서 비켜 나가는 데 있습니다. 이 작품은 완전히 정면으로 깨부수기보다는 철저하게 클리셰를 따라가면서 살짝살짝 비켜 나가는 방식을 택했고, 그 비켜 나감이 제법 맛있게 느껴집니다. 가장 우려스러웠던 지점은 링처럼 '앱을 타인에게 전파한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동일한 해결책을 갖고 오는 것이었는데, 《기리고》는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28년 만에 클리셰를 적절히 갱신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서사 운영 방식도 영리합니다. 주인공들이 단순히 공포에 떨며 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적 추론을 통해 자구책을 강구하고 저주의 원인인 앱을 강제 삭제하는 시도를 하는 등 능동적으로 대처합니다. 장르물에서 인물들이 빡대가리처럼 행동하면 시청자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이탈합니다. 이 작품은 그 함정을 피했습니다.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강점을 살려, 그쪽 세계와 소통과 대결이 가능한 존재들을 등장시켜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구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패배주의적 결말에 안주하는 서구 오컬트 호러와의 차별점이 여기 있습니다.
도해령과 권시원의 원한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는 방식 역시 우직하지만 확실합니다. 플래시백 한 회를 통째로 사용하는 방법은 올드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적어도 원한의 발생 경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가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실용적입니다. 나침반이 악귀가 있으면 돌아가는 솔직한 장치, 토속 신앙을 활용한 칼 던지기 장면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능력 이상의 트위스트를 구사하다 무너지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착실하게 해서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자세가 이 시리즈의 미덕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기리고》는 완전히 새로운 호러 오컬트 문법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클리셰를 철저히 따르면서도 살짝살짝 비켜 나가는 방식이 제법 맛있고, 그 우직함이 오히려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박윤서 감독의 현장 경험, 앙상블 배우들의 준수한 연기, K오컬트 호러 특유의 토속 문화적 기반이 맞물려 K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을 조용히 제시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