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리뷰 (블랙코미디, 역사 재해석, 현재를 향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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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뉴스》가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불한당》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킹메이커》를 통해 묵직한 정치 드라마를 선보였던 변성현 감독은 이번에는 본격적인 블랙코미디로 돌아왔습니다. 소재는 1970년 실제로 발생했던 요도호 납치 사건입니다. 얼핏 보면 오래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분명 1970년대 이야기인데 보고 있는 사람은 자꾸 현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결국 《굿뉴스》의 가장 큰 강점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데 있습니다. 역사극의 탈을 쓴 블랙코미디  《굿뉴스》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입니다. 요도호 납치 사건은 결과만 보면 제목 그대로 '굿뉴스'입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건이 비교적 무사히 마무리됐고, 외교적으로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북한으로 가겠다며 여객기를 납치한 일본 적군파, 국제 정세 속에서 눈치를 봐야 했던 정부,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공을 챙기려는 권력자들까지. 한 발짝만 물러나서 보면 심각한 사건인데 또 한편으로는 웃기고 황당한 상황들의 연속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랙코미디가 힘을 얻습니다. 비극인데 웃기고, 웃기는데 씁쓸합니다. 변성현 감독은 이 사건이 가진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창작 캐릭터를 끼워 넣어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역사극과 블랙코미디의 균형을 상당히 영리하게 잡아냅니다. 특히 설경구가 연기한 암무게라는 인물은 영화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장치입니다. 실제 역사 속 빈 공간을 메우면서도 이야기의 개연성을 만들어 주고, 동시에 블랙코미디의 웃음을 담당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캐릭터인데 영화는 의외로 이 인물을 적절한 선에서 활용합니다. 역사 재해석, 과거가 현재와 겹치는 순간 블랙코미디가 진짜 무서운 순간은...

어쩔 수가 없다 리뷰 (해고 공포, 블랙코미디, 어쩔 수 없는 일)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공개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직한 가장이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는 설정만 보면 자극적인 범죄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살인보다 해고가 더 무섭게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는 살인 영화라기보다 해고 공포 영화에 더 가까웠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왜 살인보다 해고가 더 무서운가

《어쩔 수가 없다》의 주인공 유만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거대한 야망도 없습니다. 25년 동안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했고,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그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면서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살인보다 해고를 훨씬 무섭게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대출이 남아 있는 집,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 아이들의 교육비,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좁아지는 재취업 시장까지. 유만수가 마주하는 현실은 살인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살인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사실상 버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살인은 영화 속 이야기지만, 직장을 잃고 내가 쌓아온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핵심은 "사람은 어디까지 몰리면 선을 넘는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왜 해고보다 살인을 덜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되었는가"에 가깝습니다. 유만수의 범죄가 설득력 있는 이유도 살인이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불안이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블랙코미디는 웃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의외라고 느끼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설정만 보면 무거운 범죄 영화인데, 정작 영화는 계속 웃음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고 통쾌하게 웃기지도 않습니다. 웃다가도 불편하고, 웃고 나면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습니다.
좋은 블랙코미디는 원래 그렇습니다. 《기생충》이 그랬고 《돈 룩 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웃음은 목적이 아니라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기 위한 도구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 역시 같은 방식을 선택합니다. 특히 유만수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과정은 웃기면서도 섬뜩합니다. 그는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악당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유만수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을 정당화할수록 점점 더 위험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다만 이 지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준 강렬한 충격이나 광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안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다"는 인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차분함 덕분에 현실의 불안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얼핏 보면 유만수는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경쟁자들은 사라졌고, 원하던 자리에 가까워졌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공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람이 사라지고 기계가 채워진 공간. 유만수가 사람을 제거하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자리는 결국 언젠가 사라질 자리입니다. 경쟁자를 죽였지만 시대의 변화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등장합니다. 유만수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정작 그가 지키려 했던 세상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늦은 패배를 얻었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는 착하게 살라고 설교하지도 않고, 유만수를 노골적으로 벌주지도 않습니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마지막 한마디

영화를 보기 전에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강렬한 한 방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예상보다 훨씬 차분한 영화였습니다. 대신 실직과 경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올드보이》나 《아가씨》 같은 폭발력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살인 장면이 아닙니다.
결국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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