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혁명, 권력, 그리고 다음 세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얼핏 보면 혁명가들과 권력자들의 대결을 다룬 정치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무장 혁명 단체도 등장하고, 정부와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들도 등장하며, 총격전과 추격전 같은 장르적 재미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은 혁명가를 정의롭게 그리거나 반대로 체제를 지키는 쪽을 더 정당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양쪽 모두를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혁명가와 권력자 모두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훨씬 더 중요한 질문 하나를 꺼냅니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혁명은 왜 실패하는가
영화 속 무장 혁명 단체 프렌치 75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민자를 보호하고 차별에 저항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명분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총을 들고 폭탄을 만들며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물론 본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매우 냉정합니다. 혁명가들이 아무리 순수한 명분을 외쳐도 총을 드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하고, 결국 그 피해는 더 강한 공권력과 더 강한 통제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도 비슷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은 중요하지만 그 열망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급한 분노는 자신이 무너뜨리려 했던 시스템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는 혁명을 믿지 않습니다. 문제는 혁명이 실패했다는 점이 아닙니다. 영화가 말하는 진짜 문제는 혁명가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잊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고, 결국 자신들이 비판하던 대상과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체제를 지키는 사람들은 더 나은가
그렇다면 혁명가들의 반대편은 어떨까요? 영화는 체제 수호자들에게도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스티븐 록조를 비롯한 체제 수호자들은 국가와 질서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특권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들을 거대한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게 그립니다. 왜냐하면 진짜 위험한 권력은 거대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으며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혁명가도 비웃고 체제 수호자도 비웃습니다. 한쪽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폭력을 사용했고, 다른 한쪽은 세상을 지키겠다고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결국 둘 다 폭력의 논리 안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증오하는 두 집단은 점점 더 서로를 닮아갑니다. 혁명가들은 권력을 비판하면서 권력을 닮아가고, 권력자들은 질서를 말하면서 자신들이 비판하던 폭력을 사용합니다. 영화가 보기에 혁명가와 권력자는 적이 아니라 거울입니다. 영화는 어느 한쪽의 승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쪽 모두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다음 세대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진짜 중요하게 보는 인물은 혁명가도 아니고 체제 수호자도 아닙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윌라가 있습니다. 윌라는 혁명과 권력, 증오와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하는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어른들 중 누구도 윌라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합니다. 혁명은 실패했고 체제는 부패했습니다.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싸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다음 세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묻습니다. 과연 다음 세대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총일까요, 혁명일까요, 아니면 권력일까요? 영화가 내놓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입니다. 서로를 보호하려는 공동체, 여전히 신념을 잃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이익보다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윌라를 지켜주는 존재들 역시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혁명의 성공도 아니고 체제의 승리도 아닙니다. 그 싸움이 끝난 뒤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혁명과 권력의 대립보다 윌라라는 인물에게 더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입니다. 하나의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면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됩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갈등은 반복되고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싸움을 이어 갑니다.
영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격전과 도주, 끝없이 반복되는 충돌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화는 마지막 순간 흥미로운 선택을 합니다. 계속 싸우는 대신 멈추는 것입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는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가장 크게 치르는 사람은 언제나 다음 세대라는 사실도 함께 말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혁명을 응원하는 영화도 아니고 체제를 응원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는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영화 속 혁명가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지만 점점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잊어버리고, 체제를 지키는 사람들은 질서를 말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을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영화가 비판하는 대상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세력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보다 싸움 자체에 집착하게 된 인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가장 관심 없는 것은 혁명이고 권력입니다. 영화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그 싸움이 남긴 상처와 그 상처를 떠안게 될 다음 세대입니다.
결국 다음 세대는 우리가 끝내지 못한 전쟁을 물려받게 됩니다.